유우시는 일본의 눈이 언제나 그리웠다. 하얗게 쌓인 설경과 입을 벌리면 나오는 한기 서린 입김을 사랑했다. 캘리포니아는 겨울이 없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클로스를 성적으로 오마주한 비키니 전단지가 거리에 나뒹굴었고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시야를 어지럽혔다. 유우시는 방학이 되면 스케이트 보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은 에어컨 고치기를 포기한지 오래였다. 차가운 콜라병을 하나 던져주곤 더워도 참으라고 종용하는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콧잔등으로 흐르는 땀을 옷 소매로 훔치다 보면 피부가 빨갛게 탄 백인들이 말을 걸었다. 니하오. 칭챙총. 유우시는 그런 말에는 무시가 답이라는것을 알았다. 더 나아가 어깨를 툭툭 쳐오는 사람들에게는 짧은 영어로 대꾸해줬다. 알 유 프롬 잉글랜드? 그러면 대개 화를 내다가 진열장을 치고 나가곤 했다. 한숨을 쉬며 떨어진 제품들을 정리하는것은 일주일에 세번정도 있는 일과였다. 남는 시간에는 태양에 달궈진 스케이트장 바닥을 작은 두개의 바퀴로 세차게 달렸다. 까슬하게 일어난 콘크리트가 거칠게 소리를 내며 파열음을 만들었다. 막 밀레니엄이 시작된 미국은 더웠고, 캘리포니아의 해는 견디기 버거웠다.
하필이면 드넓은 미국땅 중에서 왜 캘리포니아일까.
유우시는 더위에 지쳐 새벽에 깰때면 항상 그런 의문을 품었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발령나며 유우시네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에는 인종차별이니 뭐니 스트레스도 꽤나 받았지만 점차 무뎌져가기도 했고, 워낙 튀지 않는 성격탓에 조용히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도 겨울이 있는 지역이었다면 미국 생활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았을까. 뜨거운 열기가 폐를 옥죄는것 같다고 유우시는 생각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유우시는 익어가고 있었다.
유우시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미래 계획도 딱히 없었다. 고교시절 소망이라면 하루종일 방에 박혀서 게임만 하는거였는데 그것도 졸업후 며칠만에 이뤄버렸다. 나름 알바도 하고 가끔 스케이트도 타던 취미는 성인이 되고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서 같은 나라 친구라도 사귀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유우시가 이런 성격이 된 이유는 다 캘리포니아 때문이다. 숨막히는 열기가 유우시를 느리게 말려죽인 것이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 교회에서 만난 마에다네 아줌마랑 불륜을 저질렀다. 굳게 닫힌 방 안에서 고함이 오가는 소리가 에코가 되어 울렸다. 난 당신 때문에 전부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게임에서 패배를 알리는 효과음처럼 소음이 되어 멀어졌다. 부모님은 결국 이혼했다. 비행기 타고 미국에 온 지 몇 년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집을 떠나기 전 원망스러운 눈길로 유우시를 붙잡고 말했다. 너도 결국 토쿠노야. 증오스러운 토쿠노. 곁에 있으면 너네 아버지가 생각나 견딜수가 없어. 널 버리는 날 이해하렴. 유우시는 그 말을 듣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제가 원하지도 않은 유전적 특징 따위 아무 관심도 없었다. 어머니의 물건이 비워지고 마에다네 엄마가 텅 빈 안방을 채웠다. 아버지는 당황스럽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좋은 사이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며 통장에 돈을 꽂아주었다.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것은 껄끄러웠지만 어차피 유우시는 방에서 잘 나가지도 않았으므로 관계 없는 부분일지도 몰랐다.
아줌마는 일본에서 아들을 낳자마자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한 살 위의 마에다 리쿠는 유우시와는 사뭇 다른 결의 문제아였다. 유우시가 방에만 있어서 문제였다면- 리쿠는 밖에만 있어서 문제였다. 새로 만들어진 가족끼리의 단란한 식사는 가볍게 연락을 씹은 리쿠로 인해 뒤로 미뤄졌다. 아줌마는 의붓아들에게 나름의 정을 쌓으려는양 라자냐를 그릇에 덜어주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날의 식사는 멋쩍은 아버지의 기침과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가 전부였다. 유우시가 리쿠의 얼굴을 제대로 본것은 마에다네가 집으로 들어온지 두 달 후였다. 어째서 두 달이나 지나고 처음 만났냐고 하면- 유우시는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적었고 리쿠는 집에 있는 일이 적었으니까.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갈증에 복도로 나온 유우시는 술에 꼴은 리쿠를 마주쳤다. 벽에 몸을 기대고 가쁜 숨을 내쉬던 리쿠를 무시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유우시를 멈춰세웠다.
“ 야. ”
“ 토쿠노오.. ”
…
“ 물 좀 줘. ”
새벽에 저 주정뱅이가 소리라도 지르는건 곤란했다. 2000년대에 접어든 미국은 동양인 혐오 범죄가 만연했고, 이웃이 신고라도 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게 분명했다. 유우시는 아무말 없이 컵에 물을 따라 바닥에 내려놓았다. 부들거리며 팔을 내미는 모양이 당장이라도 컵을 쏟을 기세였다. 무릎을 꿇고 컵 가장자리를 물려주자 리쿠가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가까이서 보니 피어싱 범벅이 된 귀가 유우시의 맨들한 얼굴과 대비되어 어둠속에서도 반짝였다. 리쿠가 살짝 올라간 눈을 깜빡이더니 유우시를 지긋이 응시했다.
“ 너. 니네 아빠를 닮았네. ”
“ 너도 아줌마 닮았어. ”
“ 너 아니고, 리쿠. ”
유우시는 미국에 산지 꽤 지났지만 그래도 일본의 문화가 몸에 더 배어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형제가 자기를 이름으로 불러달라 하는게 조금 당황스러웠다. 쟤는 태어났을 때 부터 미국에 살았다던데. 이름과 성이 제 조국에서 갖는 의미를 안다는건 과대평가겠지.
“ 내 이름 불러줘.”
“ …리쿠. ”
“ 응, 토쿠노. ”
그제야 리쿠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더니 술에 취해 잠에 들었다. 은근하게 마리화나 향이 났다. 유우시는 방에서 작은 담요를 꺼내 리쿠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 나름의 배려였다.
다음날 아침, 유우시는 평소와 다른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원래 이 시간엔 잘 안 일어나는데 말다툼 소리가 너무 커서 깨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엌에 나가자 아줌마가 돌돌 말은 신문지로 리쿠를 마구 때리고 있었다.
“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집을 한 달 만에 들어와? 그동안 연락도 한번 없고, 너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 안해? 어쩜 이렇게 이기적이야. ”
“ 아. 악. 아파 엄마. 그만. やめて. ”
유우시와 눈을 마주친 아줌마가 민망한지 신문지를 등 뒤로 숨겼다. 멋쩍게 아침을 먹겠느냐 묻는 아줌마가 오늘따라 기뻐보였다. 말은 그렇게 해도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 분명 기분이 좋을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버린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날 그리워 할까. 답은 알 수 없었다. 상 위에는 잘 구운 베이컨 조각과 써니사이드업이 놓여있었다. 유우시는 빈 속에 오렌지주스를 밀어넣었다. 새콤한 맛에 속이 쓰렸다. 내심 부러워서 일지도. 리쿠는 숙취가 심한지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빵 꼬투리를 씹고 있었다.
“ 그, 유우시. 둘이 처음 보지? 얘가 아줌마 아들 리쿠야. 인사했니? ”
“ 아. 어젯밤에, 물! 토쿠노였구나. 덕분에 따뜻하게 잤어. 이왕이면 방에도 넣어주면 좋았을 텐데.”
”… 무거워 보여서. ”
푸핫. 리쿠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미안. 내가 럭비부 출신 애들이랑 놀아서- 가볍다는 말만 듣고 살거든. 무거워보인다는 말은 되게, 음, 오랜만이네. 유우시는 자기가 말실수를 한것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아마도 ‘가벼운’ 농담이었으리라. 식사를 적당히 끝내고 다시 침대로 몸을 던졌다. 조금 열린 암막커튼 사이로 뜨거운 햇빛이 비집고 들어와 눈을 찔렀다.
“ 잠은 다 잤네. ”
집에 사람 하나 추가됐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유우시는 평안한 여생을 위해서라도 리쿠가 어서 집을 다시 떠나길 바랬다. 짜증나. 완벽한 생활이 어제 부로 눈에 띄게 어긋났다. 모든 원인은 피도 안 섞인 형 하나 때문이다. 베개 아래로 얼굴을 묻고 조금 잠이 드는 순간, 리쿠가 제 방에 초대받지 못한 햇빛처럼 불시에 들이닥쳤다.
아, 진짜, f*ck..
“ 토쿠노. 나랑 나가자. ”
“ 나가아.. 제발. 나가. ”
“ 엄마가 집에만 있는거 걱정된다고 데리고 나가래. 일본어로 뭐지? 히키코무라? 그거래 너가.”
히키코모리겠지.. 유우시는 새엄마와 이복형제가 붙인 별명에 환멸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나갈 생각도 애초에 없었지만 제 멋대로 집을 헤집는 형에게 경고는 해야했다.
“ 나 어차피 우리 아빠도 엄마도 다 포기했으니까 좀 내비둬. 건드리지 말라고. 너도 멋대로 마리화나 같은거나 하고 술이나 쳐먹고 돌아다니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 병신 취급하지 마. ”
기대했던 결과는 리쿠가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유우시에 실망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자신은 다시 잠에 드는것이었다.
퍽.
둔탁한 소리가 고막을 치고 지나갔다.
유우시는 얼얼한 뺨을 잡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입안 가득 피 맛이 진하게 났다. 그니까, 지금 쟤가 나 주먹으로 친거지? 리쿠가 누가봐도 야마가 돌은 얼굴로 입꼬리를 올려 유우시를 비웃었다.
“ 히키코무라 새끼가. ”
“ 오늘 너랑 나 둘다 죽는거야. ”
히키코모리라고 이 깡패새끼야…
광합성도 못하고 몇 년간 운동이라고는 손가락 움직인게 다인 유우시의 팔은 리쿠의 우악스러운 주먹을 견디지 못했다. 할 수 있는건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웅크려 열심히 방어하는게 끝이었다. 불량아라더니 술만 먹고 다닌건 아닌가보네.. 코피가 터지는 와중에 느낀 유우시의 감상이다.
리쿠네 엄마가 금세 주먹질 소리를 듣고 뛰어들어왔다. 아줌마는 리쿠를 유우시에게서 거칠게 떼어냈다. 곧이어 짝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리쿠의 뺨이 돌아갔다. 오.. 나이스 샷. 꼴 좋다.
“ 마에다 리쿠.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대체 왜 엄마 체면 상하는 짓만 골라서 해…”
아줌마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유우시를 이 악물고 때릴 땐 언제고 자기 엄마가 울자 안절부절 못하는게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끔찍히 아끼면 똑바로 좀 살지 그래. 물론 더 맞을까봐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리쿠가 흐느끼는 아줌마를 부축하고 나가며 유우시를 무섭게 흘겨봤다. 드디어 주변이 조용해지자 유우시는 이불을 덮고 혼자만의 휴식을 취했다. 잠깐 꾼 꿈에서는 리쿠가 유우시의 암막커튼을 갈갈이 찢어버렸다. 따지자면 악몽이다.
허기짐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커튼을 치고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리쿠를 다시 마주칠것 같은 소름 끼치는 예감이 들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와 몸을 감았다. 평생 이러고 있고 싶었다. 배가 고파서 위장이 끊어질것만 같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리 했을것이다. 다행히 내려가자마자 리쿠를 마주치지는 않았다. 유우시는 사과 하나와 김 다 빠진 콜라를 억지로 욱여넣고 차고 구석으로 담배를 피러 나갔다. 평소처럼 자리를 잡고 불을 붙이려는데 옆에 리쿠가 쪼그려 앉아 대마를 피고있었다. 둘은 아무말도 안하고 각자의 도파민을 빨았다.
“ 미안해. ”
리쿠가 아침인사를 건네듯 산뜻하게 말했다. 아줌마가 시켰겠지. 뻔하다.
“ 그래. ”
똑같이 아무 감정 없는 대답을 건넸다. 리쿠가 대마 끝을 빨대처럼 질겅이며 씹었다.
“ 해볼래? ”
“ 이딴것 좀 하지마. 일찍 죽어. ”
“ 하고 사는 꼴만 보면 유우쨩이 내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일찍 죽어. ”
…
“ ..유우쨩? ”
진심으로 어이가 털렸다. 얘 호칭문화 잘 아네. 근데도 나한테 자기를 리쿠라고 부르라는건 대체 무슨 성격이야. 또라이.
“ 싫어? ”
“ 애칭 붙이는건 어떻게 알아? ”
“ 엑. 일단은 나도 일본인이기는 하니까. ”
“ 리쿠가 그렇게 부르니까 되게 이상하네. ”
“ 왜? 막 설레고 그래? ”
“ 응. ”
“ 좋네 그 애칭. ”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러. 이건 유우시가 리쿠에게 할 수 있는 작은 복수다. 다 큰 남자애한테 유우쨩이라니. 본인도 좀 쪽팔리겠지. 사실 리쿠는 호칭같은거 딱히 상관없었는데도 말이다.
시시한 화해 후 리쿠는 유우시를 뜯어고치려고 노력했다. 가장 첫번째로 리쿠가 한 일은 암막커튼을 찢어버린것이다. 그 꿈은 예지몽이었던거지. 좀 밖에도 나가면서 살아. 몸에 곰팡이 필 것 같아. 어느날은 유우시를 번화가에 데리고 나가 미용실 의자에 앉혔다. 몇 달 동안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가 날붙이에 매정하게 잘려나갔다. 원래도 곱슬이었던 머리가 엉켜 뭉쳐있던 부분이 깔끔히 떨어져 바닥에 쌓였다.
“ 이미 곱슬이여서 굳이 펌은 진행 안해도 되겠어요. ”
“ 우와… 유우쨩. 너 꽤 잘생겼었네. ”
고등학교 이후로 본 적 없는 멀끔한 얼굴이 거울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매번 포마드를 바르고 출근하는 아버지를 닮았다. 엄마가 그렇게 경멸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떠난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될것도 같았다.
“ 내가 낼게. 형 좋다는게 뭐야. ”
스무살 다 넘어서 생긴 형이 미용실비도 내주고 참 성공한 인생이다. 유우시는 파란색 포드 머스탱 운전석에 앉아 감자튀김을 씹었다. 면허도 없는 주제에 번화가에 나오자고 조르는 바람에 유우시가 운전대를 잡았다. 십대 이후 거의 세번째 운전이었지만 꽤 성공적인 주행이었다고 유우시는 평가했다.
“ 유우쨩, 유우시, 토쿠노. ”
“ 집중 안되니까 리쿠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네. ”
“ 혹시 목표가 우리 둘다 길에서 죽는거야? ”
“…”
기름진 종이 봉지 안에 담긴 감자튀김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죽냄새가 나는 커버에 기름 자국이 진하게 녹아들었다. 아버지의 세컨드 카인 블루 포드 머스탱은 그렇게 감자튀김 용기로써 의무를 다했다. 나 다시는 토쿠노가 운전하는 차 안탈테니까 그렇게 알아. 토쿠노 아니고 유우쨩. 유우시가 굳이 리쿠의 호칭을 정정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왔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형제는 차가 떠나가라 웃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에 맞추어 가사를 따라 불렀다. 유우시는 유행하는 노래같은건 몰랐지만 어설프게 음을 따라 성대를 울렸다. 캘리포니아의 데워진 열기가 피부를 끈적하게 녹였다. 흐르는 땀방울도 푸스스 흩어지는 웃음소리에 공기중으로 증발했다.
유우시는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다. 고교시절 방학 때마다 다녔던 스케이트 보드 가게였다. 리쿠는 유우시가 보드를 잘 탄다는것을 끝까지 믿지 않다가 가게에 놀러온 후로 레슨을 해달라고 졸랐다. 발을, 아니 리쿠. 거길 그렇게 딛으면 다친다고 몇 번을 말해. 확실한건 리쿠는 보드에는 재능이 없었다. 근데도 하루종일 포기하지 않고 보드를 탔다. 가게를 정리하고 나오자 리쿠가 푹 젖은 티셔츠로 보드장 바닥에 누워있었다. 유우시는 그게 조금 무방비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남자애한테 그런 생각을 품는것도 정상적이지 않은데 형제로써의 선을 나름 지킨다고 말하지 않은건 이미 어딘가 어긋난 가족애의 시작이였을것이다.
리쿠는 집에 머무르는 날이 늘었지만 종종 파티를 즐기고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 날은 익숙하게 유우시 방 문을 열고 매끈한 등에 몸을 붙여왔다.
“ 마에다 리쿠. 니 침대 가서 자. ”
“ 몰라.. 귀찮아. 유우쨩이 내 방 가서 자. ”
“ 하.. 진짜.. ”
반팔 티셔츠 아래로 맞붙은 몸에서 두근거리는 박동이 파장이 되어 퍼졌다. 리쿠에게선 알코올과 마리화나 향이 났다. 유우시는 더운 캘리포니아 공기에 리쿠가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숨막히는 태양에 술과 대마로 점철된 리쿠가 붙어 열기가 버거운 정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
“ 문 일찍 닫고 먼저 들어가. ”
사장이 드디어 에어컨 수리기사를 불렀다며 말했다. 오늘은 집에 리쿠도 없는데. 아줌마는 친구들과 저녁 모임이 있다고 했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혼자만의 아늑한 시간이었다. 유우시는 집 앞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서 타는 식도를 축였다. 기포가 터지며 따끔하게 정신을 깨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너무나 많은것이 변했다. 그게 긍정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우시는 여전히 방에서 혼자 박혀있는게 좋았고 가게에서 받는 인종차별이 지겨웠다. 갑자기 자연발생한 형이 생겼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게 없었다. 그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관념적인 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유우시는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 분명히 아무도 없을 집 안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리쿠? 본능적으로 현관 옆에 놓인 구둣주걱을 잡고 부엌에 들어서자 유우시가 목도한것은,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로 엉켜서 식탁에 엎어져있는 모습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편의점에 좀 더 있을걸, 가게에서 뻐팅기다 올걸. 역한 기분에 속이 역류한다. 우욱. 화장실로 뛰어가는 와중에 어머니가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유우시, 유우시…토쿠노, 유우시.. 그 순간 유우시는 자신의 이름을 도려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속에 든걸 다 쏟아내고 거실로 나오자 부모가 단란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메스꺼워.
“ 머리 잘랐구나. ”
“ …네. ”
“ 엄마가 진작 잘라줄걸 그랬다. ”
“ 형. 리쿠 형이랑 다녀왔어요. ”
“ 형이라니, 벌써 팔자에도 없는 형제놀이 시작한거니? ”
“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
“ 토쿠노. 어머니께 말대꾸 하지 마라. ”
권위적인 목소리가 유우시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내 아버지인게 끔찍해. 한번으로는 부족하셨어요? 다시 몰려오는 구토감에 위장이 뒤집힐것 같았다.
“… 이럴거면 바람은 왜 피셨어요. 이혼은 왜 하셨나요. ”
“ 그냥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난 네 엄마고,저 이의 아내고… ”
어머니가 훌쩍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증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표정. 인간은 지나치게 이기적이야. 이 거지같은 가족을 저주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애초에 불륜을 저지른 마에다네 아줌마도. 자기 자녀들 보단 욕구해결이 우선인 멍청한 어른들을 증오로 덧칠한다.
“ 다시 만나시는 거면 마에다는요. 수습을 어떻게 하시려고…하. ”
경멸이 목구멍을 꽉 막고 놔주질 않았다. 저 사람들의 유전자가 내 몸안에 있다는게 혐오스러웠다. 어머니가 망설이며 유우시의 눈을 피했다.
“ … 우선은 비밀로 하기로 했어. 아직 우리 완전하게 만나는것도 아니고- 관계가 확실해질 때 까진… ”
유우시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몰려오는 토악감을 참을수가 없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옳은지도 감이 안 왔다. 뇌 속을 누가 마구 헤집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토쿠노, 마에다, 유우시, 리쿠. 이기적인 부모들과 안타까운 희생양들. 구겨신은 컨버스가 달리는 발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확실했다. 캘리포니아는 유우시를 죽일 셈이다. 이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나를 몰아넣고 자살하길 바라는거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자비라도 베푸는양 리쿠를 맛보게 한 뒤 상실감에 결국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게 하는것이 그들의 계획이다.
미친듯이 달리다보니 어느새 모르는 길까지 와버렸다. 옷은 이미 땀으로 다 젖었고, 발바닥에서는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길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리쿠와 마에다 아줌마에게 말해야 할까. 그 둘이 알게 된다면 리쿠는 유우시를 떠나버릴것이다. 피도 안 섞인 동생 따위 무자비하게 두고가리라. 제 어미가 자신을 경멸하며 떠났던 것처럼 토쿠노를 증오하며 집을 나갈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유우시를 불렀다.
“ 유우쨩? ”
“ 가게에 있을 시간 아니야? ”
“ 옷은 또 왜 이렇게 젖었어. ”
아, 리쿠다. 유우시는 무기력하게 제 품에 리쿠를 안았다. 유우시는 지난 시간 온 몸을 관통하던 허무감의 원인을 그제야 찾는다. 리쿠가 없어서 그랬던 거야. 이건 리쿠만이 채울 수 있어. 그러니 가능한 만큼 그를 형제라는 명칭에 붙들어 놓을것이다. 가족이라는 허울 뿐인 테두리에 둘을 가두고 또 다른 비밀에게서 지킬것이다. 야야, 왜 그래. 집에 가자. 리쿠가 친구에게 자신과 유우시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유우시는 리쿠와 친구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는걸 가만히 듣다가 손을 내밀어 리쿠의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리쿠가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허나 둘 중 아무도 손을 먼저 빼지 않는다. 유우시에게는 그게 무언의 승리이자 다짐이었다.
아버지는 눈에 띄게 애정이 식은 사람처럼 굴었다. 리쿠도 유우시도 단박에 느낄 정도로 냉담하게 아줌마를 내쳤다. 저녁을 먹을 때면 음식이 짜다며 소리를 질렀고 깜빡하고 셔츠를 다리지 않았을때는 손을 올리기 까지 했다. 구깃한 셔츠가 미래를 예고하는 듯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리쿠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참지 않았다. 아줌마가 훌쩍거리며 화를 내는 리쿠를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멋대로 꼬셔놓고- 이딴식으로 대우 할거면 왜 데려왔어. 리쿠는 흐느껴 우는 엄마를 뒤로 하고 새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렸다. 구석에 전시되어있던 신형 골프채가 리쿠의 다리를 부셨다. 차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절규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내며 리쿠를 골프채로 구타했다. 유우시가 막아봐도 헛수고였다. 그와중에도 리쿠는 아버지에게 영어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뱉으며 대들었다. 아버지와 리쿠 사이에 껴서 중재를 하던 유우시의 입에서 피가 흘러 나올때 까지 둘은 멈추지 않았다. 제 아들의 피가 섞여 나온 침 덩어리를 바라보더니 혀를 쯧 차고 아버지가 집을 떠났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는 유우시만이 안다.
마에다네 아줌마는 오히려 리쿠에게 화를 냈다. 너가 이렇게 행동하니까 새아버지도 나를 얕보는거야. 제발 단 한 순간 만이라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줄 수 는 없겠니? 아줌마는 가능한 가장 싸늘하고 날카로운 말들을 골라 리쿠에게 꽂았다. 깁스를 하고 집에 돌아온 리쿠는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유우시의 곁에 누웠다. 두 사람의 호흡이 겹쳐져 규칙적인 소음이 된다.
“ 유우쨩. ”
“ 응. ”
“ 도망가자. ”
“ 어디로. ”
“ 그냥.. 여기 말고 어디든. 둘이 가버리자. 다 버리고, 우리 둘 만… ”
“ 나 운전 못하는거 알잖아. ”
“ 어떻게 잘 노력을 해봐봐.. 응? ”
“ 가고 싶은 곳은 있어? ”
“ 여기서 엄청 멀리. 알래스카. ”
“ … 거기는 차로 못 갈걸. ”
“ 나중에 생각할래. ”
“ 그래. 가자. 알래스카. ”
짓무른 눈가를 유우시가 손 끝으로 흝는다. 형제는 그렇게 붙어서 밤을 샜다. 알래스카의 차가운 눈을 얘기하고, 추운 날씨가 살을 에는게 얼마나 황홀할지에 대해 토론했다.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이 방을 채우는게 전부 였지만 둘은 이미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는 환자처럼 굴었다. 도달하지 못할 환상은 얼마나 달고 또 차가운지.
리쿠는 깁스를 하는 바람에 몇 주 간 친구들과 놀러나가지 못했다. 덕분에 간병은 온전히 유우시의 몫이 되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리쿠를 잡아주며 다이어트를 권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게일이 끝나면 리쿠의 방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었다. 유우시가 하루종일 놓지 않던 게임도 했다. 리쿠는 깔끔하게 10연패를 당하고 분해서 유우시 반대쪽으로 등을 돌리고 잤다.
“ 유우쨩.. 물 좀.. ”
새벽에 물을 달라고 재촉해대는 리쿠에 유우시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다 꺼진 불 사이로 출근하는 아줌마가 보였다.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아줌마는 서랍장 위에 놓인 화분을 미친 사람처럼 들었다놨다를 반복했다. 마에다 아줌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유우시를 보고 어쩔줄 몰라했다.
“ 아, 유우시구나. 이 새벽에. 음, 왜 나와있니. ”
“ 리쿠가 물 달라고 해서 내려왔어요. 아줌마는 뭐 하고 계셨어요? ”
그- 화분이 분갈이가 덜 된것 같아서. 확인을 좀 했어. 얼른 다시 자렴. 아줌마는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 조금 의아했지만 유우시는 자신을 기다리는 리쿠를 생각하느라 화분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유우시는 그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 요즘 엄마가 기분이 별론것 같아서. 같이 쇼핑이나 다녀올까 하는데, 유우쨩도 가자. ”
셋이서 어색한 데이트를 즐기게 된 이유다. 덮밥집에서 리쿠는 내내 아줌마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고- 유우시는 묵묵히 앉아서 밥이나 퍼먹었다.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리쿠를 세워두고 옷을 열다섯벌은 갈아입혔고, 그 중에 여섯벌이나 사주는데에 성공했다. 아줌마는 반짝거리는 은색 구두를 신고 가게 안을 소녀처럼 꺄르르 거리며 돌았다. 리쿠는 그걸 보고 유우시의 손을 몰래 잡아줬다. 고마워 유우쨩. 너 아니었으면 엄마 나온다고도 안 했을거야. 그게 자신 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따뜻한 리쿠의 손이 기분 좋았다. 두 손 가득 무겁게 쇼핑백을 들고 현관에 들어서자 가장 피하고 싶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아줌마가 화분 밑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색 권총이 주저없이 키스에 집중하던 어머니의 머리를 꿰뚫었다. 폭발할것 같은 굉음이 머리를 울린다. 모노톤의 깔끔한 부엌은 바닥에 쏟은 잼처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아수라장이 된 집안을 가로질러 아버지가 눈앞으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리쿠가 아줌마의 권총을 빼앗아 그를 쐈다. 복부에 칼이 박힌 아줌마와 머리에 총알이 박힌 아버지가 하나가 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리쿠가 제 어머니를 잡고 울부짖었다. 시야가 온통 새빨개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다. 아줌마가 마지막 숨을 뱉으며 헐떡였다. 리쿠, 도망가, 도망가렴. 제발. 아줌마 발에 신겨진 새 구두는 빨간색으로 둔갑했다. 유우시는 아줌마의 눈이 흰자로 넘어가자마자 제정신이 아닌 리쿠를 잡고 집을 뛰쳐나갔다. 리쿠의 지문이 남은 총을 챙기는것도 잊지 않았다. 발발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머스탱에 시동을 걸었다. 리쿠는 피 칠갑이 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연신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총기사건 연루자 둘을 태운 파란색 차는 그렇게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유우시는 미친듯이 고속도로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달렸다. 어느정도 달렸을까, 리쿠가 나지막히 입을 뗐다.
“ 우리 엄마. 이미 가능성 없었지. ”
“ … ”
리쿠는 조수석에 앉아 악을 쓰며 울었다. 놀랍게도 유우시는 눈물이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야 경찰에 잡히지 않고 다른 주로 리쿠를 빼돌릴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가득 묻은 부모의 피가 핸들을 돌릴때 마다 끈적이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리쿠는 차를 타는 내내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차 안을 떠들썩하게 울리던 웃음소리도 없었다. 양 손에 묻은 두 어머니의 피가 빠지지 않을것처럼 버석하게 지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도로는 꺾이는 길 없이 직진만을 반복했다. 유우시는 중간에 주유소에 내려서 차에 기름을 넣고 감자칩과 소다, 물티슈를 샀다. 미끈한 기름 냄새로 피 냄새가 가려지진 않을까 바랬으나 택도 없었다. 리쿠의 손을 잡고 물티슈로 닦자 피가 말라붙어 가루처럼 묻어나왔다. 힘을 주자 리쿠가 아, 하고 신음했다.
“ 미안. 살살 닦고 있는데 아파? ”
“ 아니야. 이정도는 괜찮아. ”
“ 잘 안 지워지네. ”
“ 전부 지우기는 힘들지도 몰라. ”
“ 내거는 몰라도 리쿠거는 다 지워줄게. ”
“ 유우시. ”
“ … ”
“ 나 자수할래. ”
“ 안돼. ”
“ 오면서 내내 생각했어. 이게 맞아. 상황 설명하면 경찰에서도 형을 줄여줄거고- ”
리쿠와의 키스는 짠 맛이 났다. 차안에 갇힌 열기가 둘을 미지근하게 데워버린 탓이다. 눈물과 땀이 섞인 키스는 좀 별로네. 웃는 리쿠와 키스하고 싶어. 리쿠와 행복해지고 싶어. 헤어지는건 없어. 형제란 그런거잖아? 우리는 같은 배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해. 이게 가족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난 리쿠가 자수하는 꼴은 못 봐. 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형제를 태운 파란색 머스탱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이질적으로 녹아든다. 세 명이나 죽은 하루 치고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평소같은 노을이었다.
완연한 밤에 접어들자 고속도로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모텔이 나왔다. 노란 페인트가 벗겨져 초라한 외관에 쓰러질것 같은 네온사인이 간판처럼 붙어있었다.
“ 잠깐 쉬었다 가자. ”
“ 할리우드 모텔? 캘리포니아에 뭔 할리우드야. ”
유우시는 차를 대충 주차해두고 녹이 슨 키를 받아들었다. 모텔 주인은 피가 묻은 셔츠를 보고도 아무말 하지 않고 결제서에 0을 하나 더 붙였다. 가죽 지갑에서 꺼낸 달러에서 아버지의 향수냄새가 났다.
할리우드 모텔의 스위트룸은 정확히 유우시 방의 반만 했다. 벽지에는 이불로 중요부위만 가린 여자사진이 흑백으로 붙어 있었다. 리쿠가 몸을 녹일 수 있게 욕조에 물을 받았다. 끈적이는 땀과 피에 티셔츠가 절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유우시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리쿠는 반신욕을 했다. 소름끼치는 정적을 못 참은 유우시가 욕실로 들어가 욕조 옆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매끈한 표면 위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 유우시. ”
“ …응. ”
“ 알고 있었지? ”
“ 너네 부모님이 다시 만난다는거. ”
“ 너를 탓하지 않아. ”
“ 근데 나는 자수를 안할거라면- 떠나고 싶어. ”
“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
따뜻한 목욕물이 목소리를 따라 출렁였다. 리쿠는 그 때 이후로 유우시를 유우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좁은 모텔방에서 처음으로 리쿠와 몸을 섞었다. 리쿠는 처음부터 끝까지 흐느끼며 울었다. 유우시는 그제서야 리쿠를 보내줄 결심을 했다. 자신이 그를 붙들어 둔다면 리쿠는 망가져 갈것이다. 잠시나마 가족이었던 둘은 이제 남이 되었다. 유우시는 리쿠의 몸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저 깊은 키스만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 귀에 조국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형.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겨우 이거라 너무 미안해. 리쿠는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유우시. 모두 괜찮아. 유우시는 리쿠의 눈 밑에 미처 닦이지 못한 핏자국을 핥았다. 제 부모의 피에서는 오래된 동전맛이 났다.
아침이 되자 유우시는 잠든 리쿠를 두고 로비로 내려왔다. 모텔 주인이 머리를 흔들며 졸고 있었다.
택시 좀 불러줘요. 여기서 가장 먼 주까지 가도 안 걸릴 만큼 일처리 보증된 사람으로. 그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유우시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그의 손에 얹어주었다. 한 명이면 되지. 애인이야? 보니까 엄청 싸고 돌던데.
“ 형이에요. 하나뿐인. ”
참으로 대단한 형제애네. 주인이 비꼬듯 말했다. 정확히 한시간 뒤에 내려와. 거래를 마치고 유우시는 지갑을 수영장으로 던졌다. 풍덩하고 빠진 지갑은 이내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삐걱이는 계단을 지나 퉁퉁 불은 눈으로 잠든 리쿠를 가벼운 키스로 깨웠다.
“ 리쿠. ”
“ 일어나. 갈 시간이야. ”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야. 이별을 앞에 두고 리쿠는 자꾸만 어리게 굴었다. 불안정한 청춘은 예정된 헤어짐을 애써 부정했다.
“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
유우시는 굳이 리쿠를 떼어내지 않았다. 칭얼거리는 그를 안고 머리카락을 하나씩 손으로 쓸어넘겼다. 마치 모든 부분을 각막에 새기려는 의식같았다. 리쿠가 조용히 물었다.
“ 유우시는 어디로 갈거야? ”
“ 글쎄. ”
“ 알래스카에 갈까. ”
리쿠는 유우시에게 안겨 오열했다. 강한줄로만 알았던 제 형은 연약한 아이처럼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야만 한다는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쉽사리 동생을 놓지 못했다. 리쿠가 떠나겠다고 한것은- 도주중인 동양인 형제는 눈에 띌게 뻔하고, 자신이 옆에 있으면 유우시는 자수를 끝까지 막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유우시도 그것을 알고 있다. 리쿠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키스했다.
“ 리쿠와의 키스는 항상 짠 맛이네. ”
유우시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시간이 되자 검은 밴이 모텔 앞에 서있었다. 리쿠는 뒤를 돌아 유우시와 블루 머스탱을 바라봤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수를 할 계획이다. 출소하기 전까지는 이게 유우시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애써 웃으며 리쿠가 말했다.
“ 굿바이, 유우시. ”
동생은 대답없이 슬쩍 손을 흔들어보였다. 리쿠를 태운 밴이 멀어져갔다. 유우시는 리쿠가 두고 간 마리화나를 입에 물었다. 써. 맛도 없어. 매캐한 연기가 공중으로 피어올랐다. 어렴풋이 리쿠의 향이 났다. 그러고 아주 오래 앉아서 마리화나 찌꺼기를 씹었다. 유우시가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나 공중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전화번호는 911이다.
사이렌 소리가 오래된 할리우드 모텔을 울렸다. 유우시는 증거로 미리 리쿠의 지문을 닦은 총을 제출했다. 재판은 미적지근하게 끝났다. 부모의 불륜- 아버지의 폭력. 아줌마가 쏜 어머니. 아버지가 찌른 아줌마. 유우시가 쏜 아버지. 세 개의 살인과, 세 명의 범인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어느정도의 정당방위가 성립되어 적당히 합리적인 형을 받았다. 리쿠는 끝까지 잡히지 않았다. 전부 계산에 넣은 행동이었다. 유우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먼저 자수했는지 리쿠는 알기 때문에 더욱 자수할 수 없었을것이다. 오히려 잘 도망쳐서 나름의 평안한 생활을 영유해줄것이다. 그게 리쿠의 사랑이고- 유우시의 사랑이다.
감옥 내부는 나름 괜찮았다. 불행한 가족사로 인한 존속살인은 수감자들에게 동정을 샀고, 조용한 성격덕에 관심을 끌지도 않았다. 유우시는 감옥 내부에서 돈을 주고 몰래 마리화나를 사서 폈다. 꼭 캘리포니아에서 취급하는걸로 줘. 다른게 아니면 의미 없어. 곱슬머리도 덥수룩해지지 않도록 신경써서 잘랐다. 리쿠랑 밤새 토론하던 책도 닳을 때까지 읽어서 대사를 외울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꽤 빨리 지나갔다. 유우시는 모범수임을 감안해서 8개월 일찍 출소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밟는 캘리포니아 땅은 여전히 뜨거웠고, 열기는 숨막혔다. 눈부신 햇빛에 유우시가 얼굴을 찡그리자 그리운 목소리가 둘 만의 애칭을 부른다.
“ 헬로, 유우쨩. ”
그때랑 똑같은 블루 포드 머스탱이 감옥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유우시는 가볍게 차에 타서 조수석의 선글라스를 썼다. 둘은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등지고 지평선을 향해 차를 몰아 떠났다. 언젠가는 함께 알래스카에 가득 쌓인 눈을 보러갔다. 그리곤 그리운 나라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인 뒤에 눈처럼 녹아버렸을것이다.
Goodbye Hollywood Motel
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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